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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6일 토요일

심판들의 합의판정 번복률 ML 수준과 비슷해

비디오 판독 이후 심판들의 합의판정 번복되는 비율이 메이저리그와 비슷한
57프로 때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4년 6월 4일 수요일

박명환 선수의 1400 탈삼진

박명환 선수가 1425일만의 복귀전에서 1400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프로통산 5번째 이며, 그의 1399번째 탈삼진은 2010년 7월 10일였습니다.
현역 최다 탈삼진을 보유하는 만큼 그의 기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2014년 5월 26일 월요일

메모리얼 데이에는 특별한 모자를 쓰는 메이저리그!

5월 마지막주 월요일은 메모리얼 데이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날로써, 우리나라의 현충일과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날 마다 이렇게 밀리터리룩의 모자를 쓰고 경기에 임한다.

류현진도 다르비슈도 이날 만큼은 특별한 모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야구선수

칼 에드워드 (Carl Edward)



Saint Louis Browns의 단장은 칼 에드워드에게 등번호 1/8을 주고 그와 하루 계약을 한다. 타석에 올라선 이 작은 선수는 스트라이크존을 1.5인치 정도로 잡았다고 합니다. 포수는 무릎을 꿇고 받아야했고, 투수는 결국 단 하나의 스트라이크도 잡지 못한채 그를 볼넷으로 1루로 보냅니다.
1루에서 그는 대주자로 교체가 되었고, 칼은 그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타석을 그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커리어 OBP 가 1.00으로 끝내며, 그는 그의 연봉 100달러를 받고 메이저리그에서 은퇴를 합니다.

이러한 일이...!

5월 27~29일 한국관광의 밤 Korea day at Dodgers Stadium

오는 27일(화) 오후 6시 30분부터 다저스타디움서 '한국관광의 밤(Korea Night)' 행사를 개최한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영웅 박찬호의 시구이다. 
오랜만에 다저스 스태디엄에 등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LA태권도팀 '익스플로어' 시범 공연, 씨엔블루의 정용화,  알리가 각각 애국가와 미국국가를 부를 예정이다.

야못팬의 팜플렛

장홍선님 사진 감사합니다!!
저희 야못 팜플렛까지 만들어서 인증샷을 ㅠㅠ
오늘 클라스는 '메이저리그 공인구에 메이저리거의 사인을 받다


2014년 5월 21일 수요일

김응용 감독의 선언

김응룡 감독의 선언

"잘못된 판정에는 영구 추방 당할 각오로."

김응룡 감독은 프로야구 총 19회의 퇴장으로 역대 가장 많은 퇴장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잘못 건드렸어.



2014년 3월 31일 월요일

개막전을 잡아라!

3 29, 잠실 라이벌 LG와 두산의 개막전. 치열한 접전 끝에 두산이 먼저 승기를 가져가며 경기는 마무리 되었다. 8회 초 정성훈의 쫓아가는 솔로 홈런으로 1점 차까지 따라붙어 역전을 기대했던 터라, 오랜 트윈스 팬이었던 필자에게 더욱 크나큰 아쉬움을 남긴 경기였다. 하지만 필자가 아쉬웠던 점은 비단 엘지 트윈스의 패배 만이 아니었다. 개막전, 2014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특별함을 가지고 찾은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경기는 지극히 평범한 야구 경기였다.
햇빛이 따스해지고 벚꽃이 만개하여도, 야구팬들에게 진정한 봄의 시작은 프로야구 개막전이다. 일년의 달력이 3월에 시작하듯, 야구팬들은 오직 이날만을 기다리며 길고 긴 겨울을 버텨낸다. 그리고 드디어 3 29, 2014 세븐야구르트 프로야구 개막전이 서울, 대구, 대전에서 열렸다.(부산 사직구장에서의 한화와 롯데 경기는 우천 취소) 현재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만큼 모든 구장의 개막전 티켓은 빠르게 매진 되었고, 겨울 동안 굶주렸던 야구팬들의 함성으로 경기장 또한 열기로 가득했다. 필자 또한 이날 잠실경기장에서 직접 개막전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날 이벤트로는 소치 동계올림픽의 영웅 이상화 선수의 시구, 부활 정동화씨의 애국가 제창이 있었다. 하지만 만석으로 채운 경기장을 만족으로 채우기에는 부족했고, 보는 이들의 아쉬움은 너무 컸다. 기나긴 겨울을 기다렸던 것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 느낌이었다. 흥분과 기대감을 한아름 안고 있던 야구팬들과는 달리, 구단 및 기획팀은 개막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 않은 의심을 들게 할 정도였다.
한국 프로야구와 달리, 메이저리그는 개막3연전에 어느 때보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올스타 전 못지 않은 주목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개막전을 해외에서 치르는 이벤트가 대표적인 예다. MLB 뿐 아니라 일본 또한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그들도 미국에서 개막전을 치르려는 시도를 하는 등(물론 실패하였지만) 다른 어떤 경기들보다도 개막전만큼은 큰 비중을 두어 강하게 홍보하고, 마케팅에 주력을 기울인다.

한 예로 메이저리그의 각 구장들은 개막전에서 항상 특별한 의식과 행사를 한다. 오프닝 데이를 홈에서 한다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기에, 개막전을 준비하는 홈 팀은 올스타 전을 개최하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열심히 준비를 한다. 각종 공연 및 행사와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성조기를 펼치는 것은 개막전만의 특별한 묘미이다.


<사진: Cardinals는 매 시즌 개막전마다 마차를 타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전통이 있다>

스포츠 마케터들은 개막전을 시즌 중 가장 중요한 게임으로 생각해야 한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에서도 첫 5분이 중요하듯이, 프로야구의 흥행을 위해서는 개막전을 잡아야 한다. 개막전이야말로, 숨어있는 팬들을 잡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KBO의 어느 구단도 개막전이라는 최고의 이벤트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려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쉬움이 컸던 만큼 솔직한 심정으로, 한 시즌 126개 경기 중 어느 경기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전통을 생각하기엔 아직 KBO의 역사가 짧다고는 하지만 계속 안전한 마케팅만을 고집한다면 지금과 같은 프로야구의 흥행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부디, 추운 겨울, 학수고대하며 푸른 그라운드만을 기다려온 야구팬들에게 진정한 열정과 흥분을 안겨줄 것을 기대해본다.

Written by 김동우

Edited by 김슬기 노영선

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박경태 선수의 인생 게임

야못이가 뽑은 2013 인상 깊었던 장면-1.shocking

잘알려져 있는(?) 박경태선수의 별명은 박경태러리스트다. 팬(?)들이 그의 방화 능력에 반해 붙여준 별명이다. 5시즌 연속 150km 구속과 강한 스태미너의 가능성만 믿고 기회를 주기에는 팬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2013 시즌이 들어갔고, 박경태선수는 시즌초반 자신의 방화 능력을 마음껏 발휘 했다. 크게 이기고 있으면 크게 이기고 있는데로 아슬아슬 한 리드에서는 아슬아슬한 데로 마음껏 불을 질렀다. 이젠 정말 팬들의 마음이 돌아서려 할 때 쯔음에, 갑자기의 박경태 선수가 달라졌다. 안정적인 투구를 보이며 시즌 중반을 별 탈 없이 기대 만큼 해주었다. 그리고 9월이 되자 그는 5년간 기다렸던 기아 팬들에게 보답을 했다.

9월 11일 SK전에서 그는 9번 선발 등판만에 생애 첫 퀄리티 스타트 및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했다. 7.2이닝 4피안타 1실점(비자책). 그의 기록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가 이날 경기에서 보여준 의지였다. 5회초에 카메라에 잡힌 그의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아하며 이후 2이닝을 삼자범퇴로 마무리 했다. 최악의 후반기를 보내고 있었던 기아는 박경태 선수의 의지 덕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결국 8위로 내려가긴 했다.)

사실 이후 2번 더 등판에서는 좋지 못한 피칭을 보였으나,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무실점 호투를 하며 기아 입단 8년만에 감격의 첫승을 따냈다. 박경태 선수는 2013 시즌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희망을 보여준 시즌을 보냈다.
42경기 62⅓이닝 1승 5패 4홀드 방어율 4.48 70피안타 2피홈런 32사사구 53탈삼진

박경태 선수는 다음시즌에도 또 등판 할 예정이다. (선발로 등잘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믿고 기다려준 기아 팬들과 코칭진에게 보답을 하는 시즌이 될것인지 아니면 다시 박경태러리스트가 될지,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되는 2014시즌이다.

어쨌거나 저 사진은 너무나도 멋지다...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리즈와 헤인즈 사건

어떤 프로스포츠건 외국인 프로선수의 존재는 특별하다. 동양인들 사이에서 뛰고 있는 다른 인종의 선수는 당연 튈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색다른 플레이는 리그에서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팬들에게는 신선함을 선물해준다. 하지만, 이따금씩 외국인 선수들의 존재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올 해도 또한 두명의 흑인 외국인 선수가 좋지 않은 일로 주목을 받았다.

2013년 9월 3일, LG 트윈스의 리즈 선수가 던진 공이 삼성 배영섭 선수의 머리에 맞는다. 그 동안 너무 많은 사사구가 나온 것과, 기록이 좋았던 선수에게 사사구가 많이 가는 등, 리즈 선수가 고의로 던졌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만한 상황이었다. 또한 배영섭 선수가 실려가고 난뒤, 병살을 잡고 환호하는 리즈 선수의 모습은 많은 팬들을 분노하게 했다. 경기가 끝난 후 배영섭 선수에게 사과를 했지만, 팬들의 비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 선수의 생명이 끝날 뻔한 상황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몇일이 지나자 비난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리즈 선수의 행동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리즈 선수의 출신을 욕하기 시작했다.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KKK(흑인차별단체)' 사진을 올리고 리즈 등판할 때 입고 등장한
다는 등의 인종모욕적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왔다. 더 심각했던 것은 이러한 인종모욕적인 글의 문제점을 제기하자 반응이 '잘못했으니 받아도 싸다' 였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이글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이 사건이 터지기 한달 전만 해도 일본에서 전범기를 축구장에 들고 나왔을 때, 전범기 들고온 일본인들을 욕했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흑인들의 인종모욕적인 말을 일부 팬들은 지속적으로 했다.
리즈 선수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선수 생명을 위협했으며, 그 뒤에 보여준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였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잘못된거지, '그가 흑인이라서' 잘못된걸로 바뀐다면 그것은 비난하는 사람의 잘못이다.

프로농구에서는 SK의 헤인즈 선수가 비슷한 상황을 밟고 있다. 헤인즈 선수는 농구경기에서 비신사적인 행동을 보였고, 많은 팬들은 그에게 비난을 하고있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조금씩 방향이 바뀌는 듯 하다. 행동을 비난하기 보다 가족에게 인종차별적 욕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고, 댓글에서 '깜둥이'라는 단어를 찾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비난하기전에 왜 비난하는지 잠깐만 생각한다면 '흑인이라서' 비난 할 이유는 없으니, 헤인즈 선수의 행동만을 비난했으면 좋겠다.


가끔 한국에서는 인종차별을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인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한화의 모 선수가 롯데의 모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몇일 만에 잠잠해지고 여전히 리즈 선수를 향해서 인종차별적 게시물은 많이 올라온다. 리그 수준이 높아지고 역사가 깊어질수록 외국인 선수 및 외국인들의 한국 프로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텐데, 인종차별이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OPS

다 알고 있지만 한번 더 알아보자-1
OPS (On-base plus Slugging)

모두들 아시겠지만 OPS는 타자의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죠. 보통 .900을 넘으면 훌륭한 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계산법은 간단합니다.

OPS= OBP(출루율) + SLG(장타율) 입니다.
OBP(출루율)= (안타+볼넷+사구)/(타석수+볼넷+사구+희생타) 입니다.
SLG(장타율)= (1루타+(2*2루타)+(3*3루타)+(4*홈런))/타석수

그러므로 간단하게 저 두가지 수치를 더해 준 것이 OPS입니다. OPS는 타자의 효율성을 가장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수치이고, 득점 수치는 포함 되어있지 않지만, 팀 득점 기여도에도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신수 선수가 올시즌 OPS가 .835로 마무리 했습니다. 시즌 중반에 OPS가 1.05까지 올라 갔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FA시장에서 왜이렇게 주목을 받는지 알 수 있죠. 참고로 베이브 루스의 최고 시즌 OPS가 1.16이였습니다.

비슷한 수치로 구장 크기 및 시즌 상태를 반영한 OPS+ 수치가 있는데, 이 수치를 통해서는 각 시즌 및 어느 팀에 있을 때 선수의 변화를 잘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야구없인 못살아>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스토브 리그

스토브 리그 (Hot Stove League)

원래는 시즌이 끝난후 다음 시즌을 추운 겨울에 난로 (Hot Stove) 앞에서 애타게 기다리며 다음 시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팬들의 모습에서 나온 명칭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요즘은 선수들의 비시즌 기간의 팀 이동 기간 뜻하고 있다.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퇴장당했을 때의 대처법.



1999년 6월, 야구에서 잊혀지지 못 할 사건이 터졌다. 토론토 블루 제이스와의 경기에서 뉴욕 매츠의 감독이었던 발렌타인은 판정에 불만이 생겨 심판과의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심판은 그를 퇴장시킨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감독은 경기장을 떠나야 하며 더 이상 경기를 지켜볼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희대의 사건이 일어난다. 뉴욕 메츠의 감독은 경기장에 다시 들어온다. 심판진과 사람들은 눈치를 못챘다. 이유는 그가 변장을 하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콧수염을 붙이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시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발렌타인 감독.

이 사건은 많은 야구팬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MLB 관계자들은 그의 행동을 웃어 넘기지 않았다. 그에게 5000달러의 벌금을 주며 징계를 했다. 

9월말 가을이다. 가을야구 화이팅!
야구없인 못살아.


2013년 9월 22일 일요일

스위치 히터와 스위치 피처

스위치 히터가 스위치 피처를 만났을때.

스위치 히터는 익숙하다. LG의 이종열선수, 두산의 장원진 선수등 한국프로야구에서도 수많은 스위치 히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스위치 피처는 조금 익숙하지 않다 (아직 한국프로야구에서 스위치 피처는 나오지 않았다). 양손으로 공을 던진다니, 만화에서나 볼법한 능력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에서는 이미 몇명의 스위치 피처들이 나왔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아마 페트 벤티드(Pat Venditte)일까 싶습니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스태튼 아일랜드- 브루클린 사이클론 경기에서 스위치 히터인 앤리케스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9회 2사 1루였는데, 벤티드는 글러브를 끼지 않은 채 엔리케스가 어느 쪽 타석에 스는지를 기다립니다. 엔리케스가 우타석에 들어서자, 그는 글러브를 왼손에 낍니다. 그것을 본 엔리케스는 다시 좌타석으로 바꾸고, 벤티드 또한 오른손으로 글러브를 바꾸어 낍니다. 그렇게 몇번의 대치 끝에, 결국 심판이 제제를 하러 나서게 됩니다. 결국 밴티드는 오른손으로 던지고 엔리케스는 우타석에서 치게됩니다.

이 사건 뒤로 새로운 야구규칙이 생깁니다. 일명 벤티드 규칙으로, 스위치 피처는 스위치 히터를 만났을 경우, 먼저 어느쪽으로 던질지 선택해야하고, 그뒤로 스위치 히터가 선택하는 규칙이 생겼다. 그리고, 스위치 피처는 한타자를 상대로 오직 한번만 던지는 팔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스위치 피처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MBC 청룡의 이원국 선수였다. 하지만 프로야구중에 한번도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또한 작년에 한화의 최우석 선수가 스위치 피처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그 뒤로 경기중에 손을 바꿔가며 던지는 일을 본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설사가상으로 최우석 선수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겹치면서 임의탈퇴 처리가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스위치 피처의 탄생은 조금 미뤄지게 되었지만, 나타난다면 한국프로야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줄것 같다.


여담으로 스위치 피처의 글러브는 조금 특이하다. 손가락이 6개 있는 글러브로 되어있는데, 이유는 아시다시피 오른손 왼손 바꿔 껴야하기 때문이다. 


긴 연휴를 마치며, 모두들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길 빌게요!
<야구없인 못살아>

아래 영상은 벤티드vs엔리케스 상황입니다. 흥미롭네요.


야구없인 못살아

2013년 9월 19일 목요일

대한민국 최초의 용병 선수

대한민국 최초의 용병 선수
용병 1호 조 스트롱 그리고 임창용

현재 외국인 용병 선수들은 프로야구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시즌에는 외국인 용병의 전성시대라고 할만큼 외국인 투수들이 많은 활약을 하고 있죠. 무엇보다 외국인 용병들의 한국 문화 사랑(?)을 나타낼 때 많은 팬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외국인 용병 선수는 누구였을까?

외국인 선수는 1998년 부터 처음 한국프로야구에 등장합니다. 그 첫번째 등록 선수는 현대 유니콘스의 조 스트롱입니다. 스트롱은 이 당시에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는 달리, 한국문화에 대해 빠르게 적응하며 많은 팬들에게 관심을 받았죠. (억지로 순대국밥도 먹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있다.)

조 스트롱(Joe Strong)은 사실 타이완 리그에서도 3시즌을 뛰었고, 다시 마이너에갔다가,다음 캘리포니아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결국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진정한 journey man?) 심지어 이렇게 옮겨다니다가 중간에는 2년동안 타이어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고 하죠. 한국에 왔을 당시 그의 나이는 34살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결국 시즌전체로는 좋은 활약을 하지 못해 한시즌만에 떠나 또한번 야구인생의 슬럼프가 찾아옵니다. 이쯤되면 포기할만도 한데, 그는 또다시 포기하지 않고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죠. 신이 그의 노력에 감동이라도 한건지, 결국 1999년 영화 루키로도 유명한 짐모리스와 함께 36살 늦깎이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게됩니다. 하지만, 탬파베이에서의 실망스러운 성적은 그를 또 다시 멕시코 리그를 보내지게 됩니다.

여기서 그에게 영화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 대화는 실제로 있었던 조 스트롱의 대학코치와 조스트롱의 대화입니다.

멕시코리그에서의 경기전에
"코치, 난 지금 95마일을 던지고 있어"
"구라치지마, 내가 널 코치했었잖아."

그리고 코치는 그가 93마일, 94마일 그리고 95마일의 공을 던지는 모습을 이날 봤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했다고..). 대학코치는 바로 구단에 연락해 그를 AAA리그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5월에 부상을 당한 선수를 대신해서 메이저리그에서 다시한번 던지게 됩니다. 그는 4번의 등판에서 무실점을 기록했고, 많은 미디어가 그를 조명하게 됩니다. 그 뒤 시즌에서는 7.32라는 저조한 ERA를 기록했지만, 세이브, 승을 챙기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멕시코리그로 돌아가 41세(한국나이로 43)까지 투수를 했습니다.

임창용 선수가 조 스트롱보다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서의 데뷔를 했습니다. 저는 임창용 선수가 메이저리그가서 잘하든 못하든 박수받아 마땅한 야구인생을 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주고,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 덕에 야구가 타 종목보다 더 매력적이게 다가오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조 스트롱의 인터뷰중 얘기했던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나보고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할 때마다 1달러씩 줬다면, 나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나를 더 불타오르게 할 뿐이다."

도전하는 자여 화이팅!


삼자범퇴로 잡은 임창용 선수 화이팅입니다.!

추석때 전 다 부치고..
<야구없인 못살아>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FIP (Field Independent Pitching)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Tom Tango에 의해 계발된 계산법으로, 수비와는 독립적으로 투수의 실제적인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계산법이다. 투수가 많이 관여할 수 없는 인플레이 상황에서의 변수를 최대한으로 줄여주는 계산법이다. 투수가 홈런,4구,삼진 이외의 경우에는 컨트롤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즉 야수들의 도움을 받았건 안받았건 계산에서 제외시킨다.

(13HR + 3BB - 2K)/IP

HR-홈런 BB-4구 K-삼진 IP-Innings Pitched

이 공식에다가 +3.10을 더해주면 Potential ERA를 나타낸다.

참고로 감독이 요구한 고의사구의 경우는 제외된다고 한다.

각 기관마다 조금씩 계산법이 다르지만, 투수의 투구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많이 이용된다. 또한 팀의 능력과는 별개로 각 투수의 성적만을 알아보기 위해서도 이용된다.

야구없인 못살아를 받아보세요!

이 FIP기록은 S.Record에서 제공해준 기록입니다. S.Record는 스포츠의 각종 기록을 담당하고있고, 스탯티즈처럼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https://www.facebook.com/srecord13

2013년 8월 30일 금요일

임호균 각서 파동

"임호균 각서 파동"
1988년부터 하향세를 탄 이후 1990년 김성근 감독과 구단 간의 ‘5승 각서 파동’이 있었다. 구단이 임호균 선수에게 은퇴를 종용하자 김성근 감독이 임호균 5승에 감독직을 걸었다는 설이 있다. 

물론 김성근 감독은 이 말을 지키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임호균 선수의 입장은 또 다르다고 하네요. (은퇴를 결심했다고,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팀의 리더가 필요해서 남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태평양 시절입니다!

야구없인 못살아를 받아보세요!!

2013년 8월 25일 일요일

청각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선수 커티스 프라이드.

Curtis Pride (1968~)
커티스 프라이드
현재 미국에 대학코치로 활약중인 한때 메이저리거였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1993~2006년까지 뛰었고 통산타율은 .250밖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평범한(?) 메이저리거를 소개하냐 하겠지만, 사실 이 선수에게는 야구선수로서 큰 단점이 있습니다. 프라이드 선수는 태어날때부터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야구를 해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야구는 의사소통이 엄청나게 중요한 스포츠이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13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현재 그는 대학코치 뿐만 아니라 Together With Pride라는 재단에서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으며, 수많은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충주성심학교 야구부가 생각나네요.


야구없인 못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