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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5일 화요일

글러브의 역사


글러브의 역사

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박경태 선수의 인생 게임

야못이가 뽑은 2013 인상 깊었던 장면-1.shocking

잘알려져 있는(?) 박경태선수의 별명은 박경태러리스트다. 팬(?)들이 그의 방화 능력에 반해 붙여준 별명이다. 5시즌 연속 150km 구속과 강한 스태미너의 가능성만 믿고 기회를 주기에는 팬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2013 시즌이 들어갔고, 박경태선수는 시즌초반 자신의 방화 능력을 마음껏 발휘 했다. 크게 이기고 있으면 크게 이기고 있는데로 아슬아슬 한 리드에서는 아슬아슬한 데로 마음껏 불을 질렀다. 이젠 정말 팬들의 마음이 돌아서려 할 때 쯔음에, 갑자기의 박경태 선수가 달라졌다. 안정적인 투구를 보이며 시즌 중반을 별 탈 없이 기대 만큼 해주었다. 그리고 9월이 되자 그는 5년간 기다렸던 기아 팬들에게 보답을 했다.

9월 11일 SK전에서 그는 9번 선발 등판만에 생애 첫 퀄리티 스타트 및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했다. 7.2이닝 4피안타 1실점(비자책). 그의 기록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가 이날 경기에서 보여준 의지였다. 5회초에 카메라에 잡힌 그의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아하며 이후 2이닝을 삼자범퇴로 마무리 했다. 최악의 후반기를 보내고 있었던 기아는 박경태 선수의 의지 덕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결국 8위로 내려가긴 했다.)

사실 이후 2번 더 등판에서는 좋지 못한 피칭을 보였으나,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무실점 호투를 하며 기아 입단 8년만에 감격의 첫승을 따냈다. 박경태 선수는 2013 시즌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희망을 보여준 시즌을 보냈다.
42경기 62⅓이닝 1승 5패 4홀드 방어율 4.48 70피안타 2피홈런 32사사구 53탈삼진

박경태 선수는 다음시즌에도 또 등판 할 예정이다. (선발로 등잘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믿고 기다려준 기아 팬들과 코칭진에게 보답을 하는 시즌이 될것인지 아니면 다시 박경태러리스트가 될지,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되는 2014시즌이다.

어쨌거나 저 사진은 너무나도 멋지다...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리즈와 헤인즈 사건

어떤 프로스포츠건 외국인 프로선수의 존재는 특별하다. 동양인들 사이에서 뛰고 있는 다른 인종의 선수는 당연 튈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색다른 플레이는 리그에서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팬들에게는 신선함을 선물해준다. 하지만, 이따금씩 외국인 선수들의 존재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올 해도 또한 두명의 흑인 외국인 선수가 좋지 않은 일로 주목을 받았다.

2013년 9월 3일, LG 트윈스의 리즈 선수가 던진 공이 삼성 배영섭 선수의 머리에 맞는다. 그 동안 너무 많은 사사구가 나온 것과, 기록이 좋았던 선수에게 사사구가 많이 가는 등, 리즈 선수가 고의로 던졌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만한 상황이었다. 또한 배영섭 선수가 실려가고 난뒤, 병살을 잡고 환호하는 리즈 선수의 모습은 많은 팬들을 분노하게 했다. 경기가 끝난 후 배영섭 선수에게 사과를 했지만, 팬들의 비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 선수의 생명이 끝날 뻔한 상황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몇일이 지나자 비난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리즈 선수의 행동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리즈 선수의 출신을 욕하기 시작했다.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KKK(흑인차별단체)' 사진을 올리고 리즈 등판할 때 입고 등장한
다는 등의 인종모욕적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왔다. 더 심각했던 것은 이러한 인종모욕적인 글의 문제점을 제기하자 반응이 '잘못했으니 받아도 싸다' 였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이글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이 사건이 터지기 한달 전만 해도 일본에서 전범기를 축구장에 들고 나왔을 때, 전범기 들고온 일본인들을 욕했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흑인들의 인종모욕적인 말을 일부 팬들은 지속적으로 했다.
리즈 선수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선수 생명을 위협했으며, 그 뒤에 보여준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였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잘못된거지, '그가 흑인이라서' 잘못된걸로 바뀐다면 그것은 비난하는 사람의 잘못이다.

프로농구에서는 SK의 헤인즈 선수가 비슷한 상황을 밟고 있다. 헤인즈 선수는 농구경기에서 비신사적인 행동을 보였고, 많은 팬들은 그에게 비난을 하고있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조금씩 방향이 바뀌는 듯 하다. 행동을 비난하기 보다 가족에게 인종차별적 욕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고, 댓글에서 '깜둥이'라는 단어를 찾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비난하기전에 왜 비난하는지 잠깐만 생각한다면 '흑인이라서' 비난 할 이유는 없으니, 헤인즈 선수의 행동만을 비난했으면 좋겠다.


가끔 한국에서는 인종차별을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인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한화의 모 선수가 롯데의 모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몇일 만에 잠잠해지고 여전히 리즈 선수를 향해서 인종차별적 게시물은 많이 올라온다. 리그 수준이 높아지고 역사가 깊어질수록 외국인 선수 및 외국인들의 한국 프로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텐데, 인종차별이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3년 9월 22일 일요일

스위치 히터와 스위치 피처

스위치 히터가 스위치 피처를 만났을때.

스위치 히터는 익숙하다. LG의 이종열선수, 두산의 장원진 선수등 한국프로야구에서도 수많은 스위치 히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스위치 피처는 조금 익숙하지 않다 (아직 한국프로야구에서 스위치 피처는 나오지 않았다). 양손으로 공을 던진다니, 만화에서나 볼법한 능력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에서는 이미 몇명의 스위치 피처들이 나왔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아마 페트 벤티드(Pat Venditte)일까 싶습니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스태튼 아일랜드- 브루클린 사이클론 경기에서 스위치 히터인 앤리케스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9회 2사 1루였는데, 벤티드는 글러브를 끼지 않은 채 엔리케스가 어느 쪽 타석에 스는지를 기다립니다. 엔리케스가 우타석에 들어서자, 그는 글러브를 왼손에 낍니다. 그것을 본 엔리케스는 다시 좌타석으로 바꾸고, 벤티드 또한 오른손으로 글러브를 바꾸어 낍니다. 그렇게 몇번의 대치 끝에, 결국 심판이 제제를 하러 나서게 됩니다. 결국 밴티드는 오른손으로 던지고 엔리케스는 우타석에서 치게됩니다.

이 사건 뒤로 새로운 야구규칙이 생깁니다. 일명 벤티드 규칙으로, 스위치 피처는 스위치 히터를 만났을 경우, 먼저 어느쪽으로 던질지 선택해야하고, 그뒤로 스위치 히터가 선택하는 규칙이 생겼다. 그리고, 스위치 피처는 한타자를 상대로 오직 한번만 던지는 팔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스위치 피처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MBC 청룡의 이원국 선수였다. 하지만 프로야구중에 한번도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또한 작년에 한화의 최우석 선수가 스위치 피처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그 뒤로 경기중에 손을 바꿔가며 던지는 일을 본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설사가상으로 최우석 선수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겹치면서 임의탈퇴 처리가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스위치 피처의 탄생은 조금 미뤄지게 되었지만, 나타난다면 한국프로야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줄것 같다.


여담으로 스위치 피처의 글러브는 조금 특이하다. 손가락이 6개 있는 글러브로 되어있는데, 이유는 아시다시피 오른손 왼손 바꿔 껴야하기 때문이다. 


긴 연휴를 마치며, 모두들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길 빌게요!
<야구없인 못살아>

아래 영상은 벤티드vs엔리케스 상황입니다. 흥미롭네요.


야구없인 못살아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야구계를 바꿔버린 Branch Rickey

Branch Rickey(1881~1965)
야구계의 '링컨'으로 불리는 그는 최근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에 대한 내용을 다룬 영화 "42"에서 한국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죠. 그는 최초로 흑인 선수인 재키로빈슨을 메이저리그에 데뷔 시킵니다. 흑인리그와 백인리그가 나누어진 사회에서, 그리고 아직 구단주들이 "흑인 선수 계약 금지"라는 암묵적 법칙을 깰 용기가 없을 때, 리키는 위험을 감수하고 재키 로빈슨과 계약을 합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다루도록 하고, 저는 그가 계발하고 현재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이 도입하고 있는 "Farm System(팜 시스템)"에 대해서 집중하고 싶습니다.

팜 시스템이 도입되기전까지에도 메이저리그 밑에 마이너리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팀과 메이저리그팀이 각각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선수를 계약할 때 가장 돈을 많이 제시하는 메이저리그팀이 그 선수와 계약하게 되었죠. 자연스럽게 가장 돈이 많았던 구단들이 좋은 선수들을 데려가게 되었고, 리그의 불균형은 커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죠.

당시 카디널스의 구단주였던 리키는 다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기껏 열심히 조사해서 스카웃한 선수들을 당시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시카고 컵스등 부자팀들이 데려갔으니, 답답함은 말로 할 수 없겠죠. 이러한 틀을 깨기위해 리키는 마이너리그 팀들과 계약및 조약을 맺고, 다른팀과 경쟁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마이너리그 팀의 선수들을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도입한 카디널스 구단을 당시에 사람들은 "채인 갱(Chain gang)"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도입을 통해 그들은 1931년 시즌에 101게임을 이겼고, 그리고 7게임만에 월드시리즈를 우승합니다. 그 당시 월드시리즈 우승에 주역이였던 페퍼 마틴즈 또한 이러한 마이너리그 시스템 출신이였죠. 이후 많은 구단들이 그의 "팜 시스템"을 도입했고, 현재는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이 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가 돌아가는 법칙들을 깨버리며, 발전을 도모했던 브랜치 리키, 그가 야구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도 큽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업적들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들인데, 야구계가 받아 들이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말했습니다. 곧 10개 구단이 되는 대한민국 프로야구, 어찌보면 2008 베이징 붐 이후로 서서히 관심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승부조작 파동, 난무하는 오심, 그리고 빠르게 처리해버리는 우천취소 결정등이 다시 팬들을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문제점들이 보인다면, 과감히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바꾸고 조금은 더 공격적인 변화를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야구없인 못살아>